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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과학기술에서 철학의 역할

홈런볼짱11 2022. 8. 26. 16:40

인류는 자연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왔고 결과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기술은 과학기술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원고 갈과 환경 파괴를 부추김으로써 인류 미래를 어둡게 한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가 과학기술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균형의 이해가 필요하다.

 

 

 

과학기술과 철학의 영역

 현대에 와서 ‘과학기술(scientific technology)’ 마치 단어인 듯이 쓰고 있다. 그러나 원래 ‘과학(science)’ ‘기술(technique)’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반면에 지금은 철학과 과학이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원래는 한 영역이었다.

 철학(philosophy)과 과학(science)의 어원은 각각 그리스어 필로소피아(philosophia) 라틴어 스키엔티아(scientia)이다. 참된 앎 또는 지혜를 추구하는 학문이라는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 학자들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를 알기 위해 인간과 자연을 탐구했다. 그와는 달리 기술은 학자가 아닌 장인 craftsman들의 몫이었다. 이는 technique어원이 솜씨 즉 뭔가를 제작할 줄 아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 techne에서 비롯된 것만 봐도 있다.

 정리하자면 과학의 활용과 무관하게 특정 방식을 통해 얻어진 순수한 지식 체계이며 기술 학문성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 생활에 도움을 주는 지식이라 구분할 있다. 독일의 바이츠제커는 과학과 기술은 분리된 뿌리와 둥치를 가지고 있으나 줄기는 하나의 줄기로 함께 자라는 두 개의 이웃한 나무로 비유한 있다. 과학은 철학과 동일한 뿌리에서 출발했으나 지금은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으며 과학과 기술은 서로 다른 뿌리에서 출발했으나 지금은 함께 가고 있다.

 

 

과학에서 나온 철학

근대 과학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지혜를추구하는철학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과학은 아는 것은 힘이라는 기치 아래 편리함과 유용성을 추구하는 기술과 손잡게 되었다. 과학은 철학에서 분리됨으로써 wisdom를 잃은 대신에 기술과 손잡음으로써 power을 얻었다. 과학 기술은 예리한 칼과 같아서 사람을 죽이는 살인 검이 될 수도 있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활인도가 될 수도 있다. 정신이 성숙하지 못한 어린이는 예리한 칼을 가지고 놀다가는 다치기 십상이다. 때문에 어린애한테는 예리한 칼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과학기술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과학기술은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인류복지를 위해서 수도 있고 인류를 파멸시키 수도 있다. 첨단 과학 기술을 지닌 현대 인류는 마치 예리한 칼을 갖고 노는 어린애와 같은 처지다. 현대 과학기술은 놀라우리만치 발전하고 있지만 도덕감의 상실은 극에 달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나 기업들이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고 있지만 인간 정신을 함양하는 데는 거의 투자하지 않는다.

 힘만 있고 철학적 성찰이 없는 과학기술은 인류에 어두운그림자를 드리운다. 우리가 과학기술의 힘을 지혜롭게 사용할 정신적 능력을 갖지 못한다면 결국은 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다. 첨단과학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지혜가 필요하다.

 

 

철학과 과학의 관계

 과학과 철학은 떼려야 없는 관계이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은 좁은 의미에서는 자연과학이다. 더 나아가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분과학문이라 해도 좋다. 오늘날 철학은 가지 측면에서 과학을 보완하려 한다. 하나는 여러 과학의 토대들을 점검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과학의 성과들을 종합하고 부가하는 것이다. 지식이라는 넓은 스펙트럼을 놓고 과학은 중심 부분을 차지한다.

 철학은 과학이 시작되기 전에 시작해서 과학이 자신의 과업을 완수한 다음에도 계속된다. 철학은 과학의 토대를 마련하고 과학이 이룬 성과를 검토한다는 차원에서 전 과학이자 후 과학이다. 우리가 세계를 진정으로 이해했다고 있으려면 우리의 지식은 가지 측면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전 과학으로서 철학 철학은 과학이 시작되기 전에 시작된다고 때 시간적으로 과학 이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과학 이전이라는 의미이다. 과학자는 많은 개념들을 사용하고 많은 전제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만일 그가 원한다면 그것들을 검토할 있고 일부 과학자들은 실제로 그렇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부분 과학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학의 기본 개념들을 전혀 검토해 보지도 않고 그대로 남겨둘 수는 없다. 그러한 기본개념들을 검토하는 것은 과학철학자의 몫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원인과 진리 등은 너무나 친숙한 개념들이어서 정의를 요구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사용한다. 이를 테면 질문을 이렇게 해보자.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됐습니까. 소형차는 공간이 훨씬 작다. 그가 성내야 아무런 원인도 없다. 그가 말은 진리이다.

 

시간과 공간의 정의

 우리가 여기서 사용한 시간과 공간. 원인과 진리에 대해 과연 이것들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라. 누군가가 우리에게 당신이 말하는 시간이란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당신 바보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그것을 되묻는다면 어거스틴이 말했던 것처럼 당신이 나에게 묻기 전까지는 시간이 뭔지 완벽하게 알았는데 당신이 물으니까 모르겠군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칸트가 어렵다는 순수 이성 비판에 썼던 것도 바로 시간과 공간 개념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개념들 속에는 그동안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깊은 의미들이 있다. 감기의 원인을 찾아내려고 하는 과학자에게 인과관계를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할 때까지 실험하지 말고 법칙을 찾지 말라고 수는 없다. 그는 인과관계 뭔지는 몰라도 많은 실험을 통해 마침내 놀라운 법칙을 찾아냈다고 환호 있다. 하지만 그가 다양한 조건 아래서 수많은 실험을 해서 하나의 법칙을 도출해냈다.

 주장은 얼마나 신뢰해야 할 수 있을까. 백만 마리의 까마귀가 검다고 해서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사례로부터 하나의 법칙을 도출해낸다. 귀납의 원리를 어떻게 정당화해 내느냐 하는 것은 과학 철학의 오래된 과제였다.

 

출처: 국회전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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