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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로 요절한 시인 기형도는 안개라는 시에서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를 갖고 있다'라고 했다. 시 속의 안개를 나는 '불안'이란 글자로 바꾸고 싶다. 짙은 안개는 이쪽에서 저쪽을, 저쪽에서 이쪽을 서로 보이지 않게 감춰주고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안개는 안주하거나 도망치 려는 사람에게는 은둔과 은밀한 도피를 도와준다.
떨고 있는 지남침 바늘처럼
그런데 먼 곳을 쳐다보거나 미래를 전망하고자 하는 인간은 불투명하면 답답해지고 안정을 찾지 못한다. 이처럼 불안은 전망이 불투명할 때 생겨나는본능적 심리이다. 인간이 무언가를 전망하는 것은 안정된 공간적 지도와 명료한 시간적 진행 과정을 인지할 때다. 우리가 수시로 눈을 깜빡이고 주위를 두리번거 린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주위 공간 및 대상에 늘 주의와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나아가야 할 길의 안전한 방향을 찾고 아울러 주행 중 갑자기 다른 차가 끼어들면 급제동을 하듯이 시시각각의 닥쳐올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습성은 인간이 진화해오면서 터득한 무의식적 행동일 것이다. 북극을 가리키며 가는 바늘 끝을 끊임없이 불안스레 떨고 있는 지남침처럼, 우리의 몸과 정신은 흔들리면서 불안하게 살아있다. 그것을 멈추면 더 이상 삶이 아니다. 불안도 삶의 건강한 하나의 표현이다.
삶 안에 걱정과 근심
삶과 근심 걱정 보따리 사람이 태어나면 근심과 더불어 살아간다. 장수한다고 해봤자 정신은 혼미한 채 오래도록 근심하며 죽지 않는 것이니,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장자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네 삶은 누구나 근심 걱정 보따리를 잔뜩 짊어지고 태어나서 살다 죽는다는 말이다.
기독교에서는 원죄라 하고, 불교에서는 고통이라 하고 유교에서는 우환이라하나 결국 인간존재의 불안을 상징하는 것이다. 누구든 태어나고 죽는다. 오른손으로 볼을 괴고 눈을 지그시 감고있는 반가사유상을 보라. 웃고 있는 환희의 얼굴도 울고 있는 비애의 얼굴도 아니다. 그 어중간한 지점에서 무언가를 골똘히 사유하고 있는 듯하다. 생이 있게 되면 필연적 코스로 늙고 병들 수가 없을 수 없다.
살다가 죽는 건 비극인가
그렇다면 삶은 축복일까 비극일까? 살아있는 인간은 과거의 회상하고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향해 내적의 심리적인 불안을 느낀다. 이것을 근심이라고 한다. 아울러 현재 눈앞에서 벌어지는 외적인 사건 혹은 사태를 경험하며 불안을 겪는다. 이것을 걱정이라 한다. 근심은 다가올 것에 대한 희망과 기대 그리고 예측에 대한 불안을 말하고 걱정은 눈앞에 벌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을 말한다.
우리 삶은 비극과 축복 그 사이에서 이뤄지고 만들어진다. 과거가 한 때는 좋은 추억이 되기도 하고 우울한 과거가 되기도 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행복을 찾고 비극 안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렇게 우리 삶은 이어져가고 과거를 먹고 살며 미래를 꿈꾼다.
'청천하늘에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에 수심도 많다'라고 진도아리랑은 노래한다. 저 하늘의 잔별이 내 마음속의 근심 걱정이라니. 그것이 '빛나는 별'이라니!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모두 반짝이는 별인 것이다. 불안을 따숩게 가슴 속에 껴안고 살려 했던 조상들의 지혜를 느끼는 대목이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기자.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래도 아프고 저래도 아프다면! 웃어야 할까 울어야만 할까? 왜 사냐고 묻는다면 웃는다고 답변하는 것처럼 웃으며 불안의 늪을 빠져나와야하지 않을까? 어느 일화로 혜가란 제자가 너무 괴롭고 불안하여 스승 달마를 찾아갔다.
스승 달마는 제자 혜가에게 어떻게 왔냐고 묻는다. 혜가는 달마에게 어떻게 하면 걱정과 근심을 없앨 수 있겠냐고 묻는다. 달마는 그 질문에 불안한 그 마음을 가져오라고 한다. 그 말에 혜가는 그 마음을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하니 달마는 웃으면서 이미 고쳐졌으니 가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처럼 걱정과 근심은 하나의 단면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내 삶에 꺼내서 형상화할 필요가 없다. 모두 마음이 만든 것이다. 어차피 삶이 불안을 가로질러 가는 과정이라면 그 길은 흔들리는 마음에서 눈 떼지 말고돌려 피하지 말고 그러려니 웃으며 즐겨야할 일이므로 이 순간을즐겨라.
Carpe diem
현재는 지금 뿐이다. 과거를 회상하고 후회한들 변하는 건 없다. 마음 속에 있는 걱정과 근심은 생각하고 형상화할수록 커지며 나를 잡아 먹는다. 이러한 늪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가 현재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고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집중해야한다. 그러면 점차 지금의 삶은 나아지며 과거에 안좋았던 생각들이 점차 좋아지고 에너지를 얻게될 것이다.
출처: 국회전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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