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Miguel de Unamuno의 문학과 철학

홈런볼짱11 2022. 8. 19. 06:46

우나무노는 철학과 무슨 관계를 가졌는가. 우나무노의 고민은 철학적인 문제와 관계가 있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들은 엄격한 의미에서 철학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 주요 쟁점은 철학과 유사한 지식을 담고 있다. 여하튼 우나무노가 어떤 철학적 의미를 갖고 있는가 혹은 아닌가란 질문을 할 때 그는 철학과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긴밀한 관계 한편으로는 그 시대의 철학과 우나무노와의 관계를 알 필요가 있다. 그가 철학에 참여하는 방법과 또 한 편으로는 철학 테마를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우나무노는 철학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우나무노의 철학 테마

철학이라는 테마 앞에서의 그의 태도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우나무노는 철학을 과학에서 분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인간의 위에 철학을 가까이 접근시키려 한다. 그는 그의 젊은 시절에 철학과 시는 쌍둥이와 같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철학이 문학과 도덕 그리고 신비주의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여러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서반아의 천부의 재질은 특히 문학적 재질은 그리고 철학을 포함해서 모두가 문학으로 변한다. 세네카 이후로 서반아의 철학자들은 프랑스에서 말하는 도덕군자들이다. 서반아에 형이상학이 있다면 그것은 신비주의이고 이 신비주의가 상상적이며 감정적이고 형이상학적이다.

 또 다른 면은 우나무노가 철학과 종교는 적이면서 상호 필요한 것이며 그리고 지식의 관점에서는 철학적 지식은 과학과 시 그리고 환영 또한 신화에 근접한다. 이러한 우나무노의 태도는 이성을 불신하는 그의 뿌리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그에게는 철학이 현실의 신비에 대한 반작용이라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인생 자체와 그 운명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는 철학과 모든 인간 활동을 하나로 보려는 것이다. 생의 비극적 감정의 6장에서 말하기를 철학은 생을 이성화하고 동시에 이성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는 경향이 있다. 우나무노는 과학과 지배를 비교하면서 말하기를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를 sagesse라 부르고 영국 사람들은 wisdom이라 하며 독일인들은 klugheit라 한다. 과학은 그 목적이 인생이며 생명을 연장하려 하고 쉽게 만들려 하며 고마운 것으로 만들려 한다.

 

사람의 지혜는 무엇을 찾을까?

 사람의 지혜는 죽음에 관해서 말하려고 시도하며 평안히 죽도록 준비하려고 노력한다. 철학은 죽음을 아는 것이요 살기 위하여 필요로 한다. 그러기 때문에 과학은 임시적이며 불완전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을 철학은 세계와 생을 이해한다. 철학은 세상의 통일된 전체적 생명으로 보고 이 개념의 결과를 하나의 내밀한 행동을 갖게 하는 감정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감정이 그 개념의 결과 대신에 철학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철학은 우리가 이해하는 방법이며 세상과 생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의 철인들의 내한 전기는 철학의 역사를 우리에게 설명하게 한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철학을 한다.

 즉 사람은 사람 앞에 놓여있는 어떤 감정에서 폭발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그는 어떻게 될 것이며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위안으로 삼는지 절망을 하든지이다. 사람은 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다른 것 없이 살 수 없고 행동하고 발견함이 필요하다. 즉 하나의 목적을 만들어야 한다. 우나무노에게 사람은 철학의 주체이며 지고한 목적들이다.

 

 

철학하는 이유

철학하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의 명상의 표제는 바로 사람 자체이다. 우나무노는 말하기를 철학을‘인종이 아닌 각자 사람, 구체적인 사람 살과 뼈를 가진 사람’ 즉 사람은 철학적 번뇌의 샘이다. 우나무노는 스피노자의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즉 한 사물의 본질은 자기 자신에서 무한적으로 존속하려는 것이다. 영원한 존속 즉 불멸의 열정을 가지고 있다. 영원불멸의 열망은 우나무노에게는 모든 철학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정은 자기의 존재가 영원한 것인가에 대한 근심이다. 영원치 않은 것은 실재가 아니다. 죽음은 사람의 존재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스스로 긍정하고 영원 속에서 자기 확신을 한다. 고로 생은 죽음에 연계되어있고 또 생의 이해는 죽음의 기능 안에서만 가능하다. 전통적으로 철학은 사물의 허무함과 사라지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우나무노의 철학 사상

이 사상의 근원은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것으로 모든 사물은 사라진다는데 있다. 즉 움직임과 변화는 모든 것에 영향을 주고 결국에는 존재를 없어지게 하는 것이며 이 사물의 본질적 움직임 앞에서 그리스인들은 항상 살아남는 것을 찾았고 이것을 본질, 혹은 자연이라고 했으며 동시에 이 불멸의 실체를 시험하고 움직이는 것 자체를 이해하려고 하였다.

 기독교의 출현으로 철학은 모든 사물이 사라진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이는 변함보다도 제거에 있었다. 우나무노에게 진정한 존재를 찾는 일은 개별적인 불멸이며 이것이야말로 철학의 진정한 엔진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죽음은 움직임과 변화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의 일을 죽음은 한 존재가 다른 존재로 되는 것이 아니고 주체를 말살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죽음의 현실을 제거하려는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죽음이 오면 나는 존재치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발적인 생각에서 죽음에 대한 현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사람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 경우에 인생은 유도탄이 일정한 거리를 날아가다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도 끝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 식물의 생물학적 과정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즉 한 생명의 끝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