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과 양생의 철학
health(건강), heal(치유하다), holy(신성한)는 모두 그리스어 'holos'를 어원으로 한다. 우리말이나 그리스어 어느 쪽이 든 홀로는 완전한 자기 충족의 상태이다. 먼저 존재론의 문맥에서 그것은 손상되지 않은 전체를 가리킨다. 무엇보다 온 우주가 홀로이다. 또한 천지만물과 삼라만상이 본래 모두 홀로 즉 하나하나 그 자체로 일그러지거나 손상되지 않은 전체이다.
힐링과 홀로
그리고 유기체인 생명이 하나의 전체로 온전한 조화를 이룰 때 그것을 우린 건강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건강이란 단지 질병이나 장애가 없는 것을 넘어, 생명 전체가 조화롭게 통일된 상태를 가리킨다. 서양에서는 근대에 들어와 처음 인간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건강만을 논하다가 거기에 다시 사회적 요인을 더했다. 급기야 1998년에 세계 보건기구(WHO) 집행이사회가 영적(spiiitual) 요소를 건강의 정의에 추가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인간의 건강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안녕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런 정의는 사실상 홀로의 고대적 의미에 근접한다.
앞서 말했듯이 홀로는 전체이고 건강이며 거기에 신성한 뉘앙스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더 나아가 전 지구촌이 지금 힐링 열풍에 휩싸였다. 한데 힐링 역시 홀로에서 파생됐다. 치유는 단지 아픈 부위를 고치는 의료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힐링은 부조화나 질병 혹은 손상을 극복해 생명 본연의 완전성을회복하려는 활동이다. 힐링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우주의 모든 것이 본래 홀로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인간을 포함한 천지만물 모두가본래 전일한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소우주이다. 여하한 손상을 입더라도 그것은 결국 전체성을 복원하려고 하며 치유야말로 홀로의 완전성을 회복하려는 생명활동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힐링과 신드롬
그러므로 너나없이 쉽게 힐링 신드롬을 말하지만 이처럼 우스꽝스러운 단어의 조합도 없는 셈이다. 원래 의학 용어인 신드롬은 뭔가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과도하게 탐닉하는 반응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증후군이다. 그것은 비정상적이고 일시적이며 삶의 균형을 깨뜨린다. 그러나 힐링은 이런 증후군을 극복해 정상적이고 항구적인 조화를 회복하려는 생명 활동이다.
따라서 지금의 힐링 열풍은 현대인이 여러 방면에서 건강치 못하다는 질병의 징후인 동시에 삶의 전체성과 균형을 회복하려한다는 생명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건강을 결정짓는 신체와 정신 그리고 사회적 요소는 각각 인간 활동의 여러 가치들을 반영한다.
인간은 생명 가치와 정신 가치와 사회 가치 그리고 도덕 가치를 추구한다. 그것들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삶이 온전하고 건강하며 신성해진다. 과거 이후로 인류문명의 모든 진보가 그 가치 세계에서 펼쳐졌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그 가치들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마침내 돈과 권력과 지위와 명성을 쫓는 탐욕의 거친 숨결만 남았고 급기야 신자유주의 광풍으로 그 조차 죄다 돈의 가치로 수렴되고 말았다 하여 연봉 얼마 대한민국 수치가 인생의 모든 가치를 잠식하고 표상한다.
물욕의 신드롬
그것이 사람의 목숨 값이고 권력과 직위의 무게이며 인간의 정신과 영혼과 사회적 고귀함의 척도가 됐다. 역겨운 허영의 시대이고 누군들 몸과 마음이 온전할수없다. 온전치 못하니 아프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돌이켜 보자. 오늘날 무엇이 정녕 우리의 안녕을 위협하는가. 인간성의 조화를 깨트리고 건강을 파괴하며 영혼을 잠식하는 모든 증후군이 결국 물욕 신드롬으로 수렴된다. 물질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과도한 탐닉이 인류를 만성적인 질병과 고통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부자가 될수록 그만큼 행복해진다는 물질주의와 자본주의 혹은 공산주의의 소박한 근대적 이상은 사실상 실패로 막을 내렸다. 물질이 풍요로워졌으나 삶은 갈수록 더 고달파지니 말이다.
대신 지난 수 세기의 근대화 과정에서 아무렇게나 처박아뒀던 생명가치 그리고 정신가치와 도덕가치가 다시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일어선다. 나는 살아있어요. 내 정신은 자유롭고 양심이 밝게 빛나길 바라죠. 이런 아우성이 모여 지금 인류문명에서 힐링의 열망을 다시금 창조한다.
힐링과 양생
그러니 힐링은 유령처럼 어둠 안을 배회하는 신드롬이 아니다. 힐링은 차라리 본능의 아우성으로 새 아침을 열려는 새벽녘 새들의 지저귐과도 같다. 너도나도 도처에서 아프다고 한다. 아프니 치유가 필요하고. 하여 힐링이 대세란다. 하지만 아프다는 아우성이야말로 실은 살아있음의 증거다. 아픔마저 느끼지 못하면. 그야말로 죽은 목숨이 아닌가 말이다.
상처 입고 손상된 모든 생명은 언제나 자기 치유를 하려고 한다. 데이고 베어 살점이 갈라져도 살아있는 생명에는 늘 새살이 돋는 법이다. 그러므로 앞서 말했듯 힐링은 홀로의 완전성을 회복하려는 생명 활동의 본능이다. 세계적인 기상이변도 따지고 보면 인간에 의해 파괴된 균형을 회복하려는 지구의 힐링이다. 탐욕과 오만에 빠진 인간이 댐을 쌓고 물길을 막아도. 강은 언제나 본연의 흐름을 되찾아 스스로를 치유하려고 한다.
아무리 물질이 만능인 시대라지만. 수십만 년 진화의 결과로 인간의 본성이 된 정신과도덕과 영성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늘날 인간이 유사 이래 최고도로 물질의 노예가 되다시피 했다지만 그래도 그 극한의 변곡점에서 삶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아우성이 그래서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힐링은 사물이 극에 달해 반드시 반전한다는 주역의 물극필반이요,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운동이라는 노자의 반자 도지동이다.
출처: 국회전자도서관